1.
멕시코 국경 도시인 레돈도에서 67년째 살고 있는 곤잘레스 영감은 그것을 처음 봤을 때 죽은 아들 벨라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벨라는 전에도 그런 모습으로 문을 두드린 적이 있었다. 미국으로 밀입국 해 돈 많이 벌어서 돌아오겠다던 벨라는 돈은커녕 결핵이니 영양실조니 옴이니 하는 구질한 병만 안고 돌아왔다. 나이 마흔이 넘어 벨라는 아홉 번째로 미국행에 나섰고 일 년간 소식이 없었다. 드디어 미국에 자리를 잡았나 싶었을 때, 그러니까 모든 불행한 사연의 배경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어느 비 내리는 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곤잘레스 영감은 미국 정착에 실패한 벨라가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직감하고 따뜻한 아버지의 미소를 머금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문 앞에 서 있는 건 산송장이었다.
비와 흙과 피에 엉킨 머리칼이 목까지 늘어져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피를 철철 흘리는 오른쪽 손목은 썩어 문드러졌는지 떨어져 없었고, 옆구리에서 꾸물꾸물 새어 나오는 창자를 남은 한 손이 계속 밀어 넣고 있는 그것은 무덤에서 기어 나온 송장이 틀림없었다. 영감은 주방으로 뛰어가 칼을 찾았다. 그런데 그 송장이 비칠비칠 집 안으로 다리를 끌며 들어왔다. 아버지. 곤잘레스 영감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디오스 미오. 디오스 미오. 산송장이 내 아들 벨라라니, 이 뻔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니. 영감은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아들을 끌어안았다. 샌디에고에서 약을 팔았어요. 신께 맹세하지만 그곳이 콜롬비아 애들 구역인 줄은 몰랐어요. 놈들이 제 팔을 자르고, 샷건을 제 배에 박고, 국경에 제 몸을 묻었어요. 비만 안 내렸다면, 그래서 흙이 구덩이 밑으로 빠지지 않았다면 그대로 생매장 됐을 거예요.
2.
멕시코 정부는 미국과 통하는 모든 국경을 폐쇄했다. 미국에서 수만 마리 좀비들이 끊임없이 멕시코로 기어 왔기 때문이었다. 미국으로 가려는 멕시코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거의 백 년에 걸쳐 미국으로만 향하던 국경의 풍경은 달라졌다. 아메리칸 드림은 멈췄고 멕시코로 넘어오는 좀비를 막기 위해 미국과 접한 모든 국경에 삼 미터 높이의 시멘트 벽과 전기 철책이 세워졌다. 그것은 캐나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갑자기 국제 사회에서 미국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위성사진, 항공사진을 판독한 결과 모든 미국인이 좀비가 돼 버렸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했다. 형제의 나라 영국이 두 차례에 걸쳐 군대를 투입시켰지만 그들 역시 감감무소식이었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도 강대국들은 처음에 입을 다물었다. 세계 증시가 무너지고, 미국이 관여했던 모든 분쟁 지역에서 국지전이 거세지고, 세상이 혼란에 빠지자 중국이 먼저 치고 나왔다. “아메리카는 이제 좀비리카가 되었다.” 삼억 미국인이 좀비가 돼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상은 경악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중국은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앞으로 기축 통화는 달러에서 위안화로.” 그러자 러시아도 나섰다. “미국의 F-22 전투기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습니다. 전투기 구입 문의는 이제 러시아로.” 역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탄도 미사일 다량 확보.” 일본도 가만있지 않았다. “Vivid는 추억으로. SOD가 곁에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 해병대 존 밀러 대위는 독특하게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탐 행크스’가 맡은 역할과 이름이 똑같았는데, 아무튼 그는 조국의 비극적인 운명을 탈레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미국이 좀비랜드가 되어 인접 국가들로부터 완전히 차단되고 지도상에서 지워졌다는 프랑스 르몽드지 기사를 탈레반이 복사해 미군 주둔지 전역에 뿌린 것이다. 많은 병사들이 탈영해 영국이나 호주 같은 우방국으로 망명을 신청했는데, 존 밀러는 달랐다. 영화 속 탐 행크스처럼 용맹하게 혼자 탈레반 소탕에 나섰고 끝내 포로가 되었다. 존 밀러는 토굴에 갇혔고, 토굴 감옥 경비는 탈레반 말단 병사 카림이 맡았다.
얼마 후 존 밀러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카림의 본명은 ‘카림 빈 라쉬드 알 막툼’, 그러니까 ‘막툼 부족 라시드의 아들로 온화한 카림’이라는 뜻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우리 이름에는 아빠 이름만 들어가 있어. 내 이름에도 내 아버지의 이름 ‘라시드’가 들어가 있잖아. 그러니까 우리 무슬림이 여성을 차별한다고 오해받는 거야. 오해지. 암, 오해고 말고. 그래서 난 이 오해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아랍 이름에 아빠 이름 대신 엄마 이름을 넣어야 된다고 생각해. 그렇게 되면 내 세 명의 자식들 이름은 이렇게 바뀌겠지. ‘압둘 빈 아말 알 사디(사디 부족 아말의 아들 압둘)’, ‘오마르 빈 바노 알 하디드(하디드 부족 바노의 아들 오마르)’, ‘하미다 빈트 라자 알 사우드(사우드 부족 라자의 딸 하미다)’. 내 자식들 이름이 각각 ‘압둘’, ‘오마르’, ‘하미다’이고 내 아내 이름이 각각 ‘아말’, ‘바노’, ‘라자’니까. 그랬다. 카림은 아내가 셋이었던 것이다. 몇 달 후,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미군 주둔지에 새로운 전단이 뿌려졌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제국주의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행복. 탈레반으로 건너오세요.’ 그리고 그 아래에는 부르카를 뒤집어 쓴 여자를 한 팔에 한 명씩 품은 존 밀러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문예창작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좀비 타임즈 1+2+3 (0) | 2010/10/04 |
|---|---|
| [박범신- 은교] 소설판, 한국판, "데미지" (0) | 2010/08/31 |
| 좀비 타임즈 1 + 2 (0) | 2010/08/18 |
| 좀비 타임즈 -1 (0) | 2010/08/06 |
| 손홍규의 "이슬람 정육점", 일상에 함몰되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과 유머 (0) | 2010/08/02 |
| 완숙 계란 두 개, "전쟁 전 한 잔"과 "무덤으로 향하다" (0) | 2010/07/0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