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또는 정계를 무대로 다룬 영화는 대체로 재미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암투와 배신, 음모의 과정은 평상시 사람들이 품고 있던 정계의 뒷모습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대통령의 음모]나 존 F. 케네디 암살의 진상을 파헤치는 [J.F.K], 미소 양국이 일촉측발의 상황에 치닫는 쿠바 미사일 사태를 그린 [D-13] 등 대부분의 정치적 소재를 다룬 영화들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해소함과 동시에 그럴싸한 서스펜스를 제공함으로 영화적 재미를 갖추고 있다.
[바비]는 존 F. 케네디의 동생이자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F. 케네디의 암살을 다룬 영화다. 따라서 필자는 처음에 [J.K.F]급의 미스테리성 짙은 정치 스릴러물이 탄생할 줄 알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서 [바비]는 앞에서 언급한 정치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이 작품은 바비(로버트 케네디의 애칭)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암살당하던 날, 바로 그 장소인 앰베서더 호텔의 하루를 조명하면서 그 호텔에 있었던 수많은 인물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하루동안에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다보니 사실상의 주연배우는 없는 셈이다. 각자 저마다의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나 소소한 에피소드가 말 그대로 '나열'되고 있으며, 각 인물간들의 연관성도 그다지 크진 않다. 이 인물들이 겪게 되는 공통적인 이벤트는 바로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언급되는 '바비의 암살'일 뿐이다.
오히려 영화는 바비의 죽음보다도 그가 변화시키려 했던 미국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당시 미국의 삶. 이민자들이 겪는 차별적인 설움이나, 호텔 전화 교환원으로 일하는 저소득층의 스트레스, 마약에 빠져 파탄에 이르는 히피 등 이들 캐릭터는 당시 미국인들의 삶 하나하나를 대변하는 상징성을 띈다. 그리고 이들이 가졌던 문제들에 관심을 가졌던 바비가 총에 맞아 죽음으로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슬퍼했는가를 관객들이 감정이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출신 감독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의 역량탓인지, [바비]에는 수많은 주연급 스타들이 총동원되는데,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캐스팅이라고 밖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을듯하다.
[바비]에 등장하는 스타들 명단 보기...
크리스찬 슬레이터: 최근 하향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청춘스타로서 인기를 누렸던 그는 [영건스1,2]에서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와 공연한 적이 있다. 다소 삐딱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모습의 식당부 관리인으로 등장.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최근 [다이하드 4.0]과 [데쓰 프루프]등으로 주가 급상승 중인 신예. 친절하고 사려깊은 웨이트리스로 출연한다.
데미 무어: 한때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와 연인이었던 그녀로선 실로 오랫만에 그와 부부역할로 출연하고 있다. 한때 인기절정이었던 청순함이 사라져서 안타까울 뿐.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마틴 쉰의 아들이자 찰리 쉰의 형으로, 이번 바비에선 각본과 감독을 겸한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헐리우드 주류의 변두리에서만 맴도는 그의 재능도 이젠 인정받아야 할 때가 온 듯 한데...
해더 그레이엄: [오스틴 파워2]로 스타덤에 오른 그녀. [바비]에선 호텔 메니저와 내연관계에 있는 전화 교환원으로 등장한다.
샤이아 라보프: [트랜스포머], [디스터비아]로 인기 급부상 중인 헐리우드의 유망주. 이번에도 특유의 어리숙한 코믹연기를 발산하는 선거 자원봉사자로 출연.
애쉬튼 커처: [나비효과], [가디언] 등으로 스타반열에 합류한 애쉬튼 커처. 마약 판매상인 히피족 역할로 등장한다.
헬렌 헌트: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로 오스카 주연상을 거머쥔 명배우로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순 없는지 다소 노쇠한 모습이 안타깝지만 그런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어 좋다.
마틴 쉰: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의 친 아버지로, 아들이 감독한 영화에 기꺼히 출연하고 있다. 인기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는 대통령으로 출연하지만 여기산 헬렌 헌트의 남편으로 등장한다. 노년에 들어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린제이 로한: 페리스 힐튼과 더불어 헐리우드의 개망나니 이미지가 강한 그녀지만, 작품에서 만큼은 프로답게 캐릭터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 [바비]에선 남자의 징집면제를 위해 기꺼히 자신을 희생하는 신부로 등장한다.
로렌스 피쉬번: [매트릭스]를 통해 너무나도 잘 알려진 배우. 이번엔 주방장 역할로 평상시 이미지에 비해 다소 순한(?) 역할을 맡았으나 후배들을 독려하는 진지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일라이자 우드: [반지의 제왕]의 프로토 역으로 스타덤에 오른 아역출신배우. 여기선느 린제이 로한과 결혼을 앞둔 소심한 청년 역할을 맡았다.
샤론 스톤: 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여배우로서 왕년의 관능적인 모습은 어디가고 이젠 할머니 모습이 슬슬 나타나긴 하지만 오히려 [바비]에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느덧 프로 연기자의 관록이 묻어난다. [바비]에서 가장 멋진 연기를 보여준 배우.
안소니 홉킨스: 자타가 공인하는 명배우로 [양들의 침묵]을 통해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에선 호텔 지배인으로 등장해 세월의 덧없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멋진 노신사로 등장한다.
프레디 로드리게스: [식스 핏 언더]로 헐리우드 유망주가 된 그는 이 작품에서 배려심 깊은 주방 보조로 등장해 좋은 연기를 펼친다. 다른 배우에 비해 비중도 높은 편.
이정도만 열거해도 엄청난 캐스팅이지 않은가? 이 같은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아놓는 것이 앞으로 가능이나 할련지...
사실 [바비]는 로버트 F. 케네디의 암살사건을 다루었다기 보다는 그의 죽음을 영화속의 장치로 사용했을뿐, 전체적인 내용은 다소 산만하기까지 하다. 미국인들, 특히 1960년대의 격동을 경험했던 -마틴 루터 킹 암살, 베트남 전쟁, 말콤 X 암살, J.F.K 암살, R.F.K 암살 등- 사람들의 정서에 철저히 맞춰진 영화임으로 대중적인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나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를 스타들의 총출동하는 모습이나 바비의 최후가 어떤 상황에서 발생했는지 궁금했던 분들은 비교적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
* [바비]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Weinstein Company.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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